담임목사 칼럼

하나님의 종

By 2020년 9월 3일 No Comments
본문: 예레미야 27:1-11
찬송: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선지자의 멍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말로만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삶이 말보다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난을 예고하기 위해서 자기가 만든 멍에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이스라엘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고 음란한 자녀를 얻어야 했습니다. 에스겔은 혀가 입천장에 붙어서 말을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390일 동안 좌로만 누워자고, 40일 동안 우로만 누워자며 인분으로 떡을 만들어 먹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가 간청하여 소똥으로 대신하게 되지만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들이 당해야할 고난을 선지자가 먼저 경험한 적이 많았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보는 자입니다. 그 고통을 먼저 경험하고 먼저 눈물 흘리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지자의 눈물입니다. 그 눈물 없이 외치는 심판의 메시지는 공허합니다. 공허한 메시지가 많아집니다. 선지자의 눈물은 없고 옳다고 주장하는 소리만 가득합니다. 회복을 위해서 교회에 필요한 것도 선지자의 눈물입니다. 성도는 선지자의 멍에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다행한 일은 우리가 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종은 더 무거운 멍에를 지게 되지만 하나님의 종은 자유케 될 것입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

종처럼 살면서 자유하다고 외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종의 멍에를 다시 찾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외롭고 힘들어서 술잔을 기울이지만 술의 노예가 되고 술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알콜 중독자가 됩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보십시오. 진정한 기쁨을 갈망하다가 쾌락을 쫓습니다. 현실을 떠나고 싶고 환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 위험한 시도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습니다.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바벨론의 멍에는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서 다시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그들의 멍에를 지고 살라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의심했습니다. 결국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선지자가 진짜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낸 목적은 당신을 고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라고 전했습니다. 그 고통이 싫어서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더 무거운 바벨론 왕의 멍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는 헛된 노력을 멈춰야 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 경험하는 고난을 기뻐하게 하소서. 나에게 허락하신 선지자의 멍에를 기쁨으로 메고 선지자의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2.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소서. 나에게 하나님의 선지자를 보내신 목적을 깨닫고 피해가려는 자가 아니라 돌이키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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