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하나님과의 동행

By 2020년 5월 2일 No Comments

본문: 신명기 12:8-19
찬송: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예배의 장소

이스라엘 민족은 약속의 땅 앞에 섰습니다. 요단강 앞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를 위해서 광야를 걸어온 것이 분명합니다. 광야에서의 시간은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광야는 예배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과 늘 함께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평가한 그들의 예배는 낙제점이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에게 진짜 광야가 된 이유였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 가서 예배하라 명령합니다. 그 성소에서 드려질 예배에는 흠이 없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구별하여 세워진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그 예배가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 너희 자녀와 너희 노비와 너희와 함께하는 레위인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전은 건물 그 이상입니다. 예배는 성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늘에 원형이 있고 모세는 그 모형대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안에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말씀으로 사는 자는 가는 곳마다 예배의 장소를 세울 것입니다.

삶의 장소

예배와 일상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 자가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는 해결할 수 없는 불연속성, 즉 단절이 존재합니다. 예배는 그 단절을 회복하는 장소입니다. 그 예배의 자리에서 죄인은 하나님의 눈에 의인이 됩니다. 심판 받아야 할 자가 선물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배의 자리는 너무 낯선 장소가 됩니다. 그곳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낮설고, 그 진리의 말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단절된 자들을 향한 특별한 사랑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 모를 뿐입니다. 모든 삶의 장소는 확장된 예배의 영역이어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원하시는 것을 그곳에서도 동일하게 기대하십니다. 그런데 성도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중단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배에 실패해서 버림받은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가인과 사울이 그러합니다. 왜 그들은 실패하고 버림받았을까요? 그들은 예배의 장소에서만 하나님을 만난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삶의 자리를 구별하지 마십시오. 그때에야 당신은 온전한 예배자가 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1. 내 자신이 교회가 되게 하소서.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살아낼 힘을 주소서. 자녀. 노비. 제사장.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2. 예배와 삶의 자리가 구별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어느 곳에나 계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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