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주의 길을 걷는 사람들

By 2021년 1월 16일 No Comments

본문: 마 3:1-10
찬송: 519장. 구주께서 부르되

회개하라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적지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목적지를 찾았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하기 전에 당신은 길을 잃은 자에 불과했습니다. 회개는 고통스럽습니다. 나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가장 큰 잘못은 회개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서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쳐야 했습니다. 천국이 가까이 온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하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자기의 왕국에서 왕 노릇하며 살기를 고집할 것입니다. 회개하기에 좋은 자리는 산 정상에 있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요한에게 찾아왔습니다. 더 놀랍게도 그들을 향하여 독설을 내뱉는 세례요한을 만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 그들은 여전히 회개의 은혜를 입기에 준비가 되지 않은 자들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너무 높은 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회개라는 행위 때문이 아니라 회개해야 할 당신의 죄악들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바닥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은혜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 은혜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회개는 한번의 행위가 아닙니다. 열매를 맺는 지속적인 순종의 행위입니다. 열매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나서 아직도 회개에 합당하지 않은 당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구원의 믿음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요한의 저주를 받은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수고하신 것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문제는 그들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한 것에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이 작은 착각이 그들을 위태롭게 했습니다. 그들은 심판의 문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찍혀서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은 축복된 일입니다. 아직도 죄악된 세상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회개 이후의 삶을 오해합니다. 여전히 연약함 가운데 있을지라도 당신의 삶은 하나님의 구속의 손길 가운데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 길을 다시 돌이키지 마십시오.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길을 곧게 해야 마땅합니다.

기도제목

1.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소서. 바리새인들처럼 회개의 자리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비극을 피하게 하소서.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되게 하소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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