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주가 쓰시겠다 하라

By 2021년 3월 6일 No Comments

본문: 마 21:1-11
찬송: 25장. 면류관 벗어서

예수님의 순종

시켜서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자의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순종과 복종의 차이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심으로 순종을 배우고 겸손하여 지셨습니다. 겸손해 지는 것은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모든 순종에는 자기를 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뜻이 너무 달랐으나 고난을 겪으시고 예수님이 기꺼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복종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종의 모습을 피하기 위해서 겟세마네에서 순종의 길을 먼저 정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의 잔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겟세마네에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모든 순종에는 겟세마네가 필요합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순종의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더 늦기 전에 순종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순종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순종으로 가득합니다. 빗나간 과녁을 다시 맞추기 위한 예수님의 순종이 얼룩진 당신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예수님이 기대한 순종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기대로 가득하셨습니다. 비록 그 기대가 곧 실망스러워 질 것을 아셨지만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또 한번의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순종을 요구하는 것과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다릅니다. 순종은 힘으로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면 당신 안에 순종할 만한 믿음을 보셨기 때문일 겁니다. 예수님은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제자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나귀를 구해오라고 명령하셨는데 값을 준비하여 주지 않은 것입니다. 나귀 주인의 순종을 기대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귀의 순종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입니다. 주인이 허락하였기 때문입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메시야의 모습은 무언가 어색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이 낯 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모습이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왕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특권과 영광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이 땅의 무엇으로 그 영광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겸손의 옷만 그 영광에 합당할 것입니다. 겸손하신 주님이 당신에게 순종을 요구하셨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복종이 아니라 순종이 분명합니다. 주님이 사용하시는 자가 되십시오. 그것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이 땅에 없습니다.

기도제목

1.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소서. 순종의 길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순종을 배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부르심에 복종이 아니라 순종으로 답하게 하소서.
2. 예수님의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수님이 나에게 기대하신다는 사실이 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주님이 사용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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