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

By 2023년 5월 16일 No Comments

본문: 삼하 18:24-33
찬송: 549장. 내 주여 뜻대로

전령이 전하고 싶은 소식

전령은 소식을 전하는 자입니다. 자기가 전하는 소식의 내용과 자신의 운명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아히마아스와 구스 사람은 동일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다른 모습으로 달렸습니다. 아히마아스는 그 소식을 기뻐한 자였고 구스 사람은 그 소식을 오해한 자였습니다.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로 기억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달리기를 보고 그가 기쁨에 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가지고 온 소식은 다윗에게 좋은 소식이 분명했습니다. 구스 사람도 다윗에게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구스 사람이 전한 소식은 다윗을 절망하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구스 사람은 다윗이 얼마나 압살롬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당신은 그 소식을 어떻게 전하고 있습니까? 아히마아스와 같이 기쁨으로 전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의 모습은 기쁨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의 좋은 소식과 너무 동떨어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맛있는 맛집을 알려주는 일에도 기쁨과 열정이 담깁니다. 내가 체험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전에 먼저 기쁨을 누리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때 그 소식은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이 듣고 싶은 소식

다윗이 듣고 싶은 소식은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이 아니라 압살롬이 살아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버지로서 다윗은 압살롬의 불행을 막고 압살롬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대신해서 죽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한탄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갈망하는 분은 아버지입니다. 대신해서 내가 죽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부르짖는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하고 대단한 성취를 얻기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명의 죄인이 돌아와 구원 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세상은 이 아버지의 기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누가 잃어버린 한 마리를 구하러 아흔 아홉마리의 양을 내어버려 두고 죽음의 자리로 가겠습니까? 더 많은 양을 지키는 것이 목자의 사명입니다. 어쩔 수 없이 희생이었다고 말하면 이해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럴 수 없습니다. 한 영혼을 위해서 세상을 내어 주고 자기 목숨을 내어 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원수인 압살롬을 죽였고 다윗은 자기의 아들인 압살롬을 살리고 싶어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정말 듣고 싶은 소식은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서 수천 수만 명이 모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영혼이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기뻐하십니다. 그때 하늘에서 잔치가 시작됩니다.

기도제목

1. 내가 전하는 기쁜 소식을 내가 먼저 누리는 전령이 되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하늘에서 하나님이 듣고 싶은 좋은 소식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