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조롱을 참을 수 있는 사랑

By 2024년 2월 20일 No Comments

본문: 마가복음 15:24-32
찬송: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우리를 구원해 보라

옷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최초의 옷을 만들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하던 감정입니다. 죄의 결과는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수치감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빛 가운데 나아갈 용기를 잃게 됩니다. 숨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두려움과 수치에 떨고 있던 자들은 자신을 가리기 원했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름다운 옷을 준비해 주십니다. 죄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 분명합니다. 옷은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죄인의 자리에서 옷이 벗겨지고 빼앗기고 제비를 뽑게 됩니다. 은혜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죄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자칭 이라는 단어를 요구했지만 빌라도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빌라도의 눈에는 이 사람이 분명 유대인의 왕이었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주권자가 알 수 있었는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은 알지 못했습니다. 대신 우리를 구원해 보라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예수님에게 참을 수 없는 조롱이 분명합니다. 그 예수님은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십자가에 달린 자가 스스로 내려올 수 없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그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였을 때입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던 자들은 예수님의 고통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정말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예수님을 조롱하고, 두 명의 강도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도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군인들이 조롱하고 당시 종교지도자들도 조롱했습니다. 그들의 조롱은 모두 동일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구원해 보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조롱은 남을 구원하겠다는 자가 자신 하나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 있는 능력도 있었고 그럴만한 명분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서 자기를 구원하는 방식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길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어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음을 택한 위대한 사랑은 조롱 받고 있습니다.

기도제목

1. 조롱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내어 주시고 조롱까지 참으며 사랑하신 주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2. 십자가에서 내려오기를 갈망하는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주님을 따라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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