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어떻게 주를 사랑할 것인가

By 2024년 2월 7일 No Comments

본문: 마가복음 12:35-44
찬송: 215장. 내 죄 속해 주신 주께

거룩해 보이는 위선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다윗은 그 그리스도를 자기의 후손이 아니라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다윗의 고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종교적인 열심은 있지만 하나님의 열심을 이해하지 못하여 어떻게 주를 사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변화입니다.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고 시장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잔치에서 윗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거룩해 보이는 자들은 더 큰 심판을 바로 앞에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해 보이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권위를 인정하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눈 앞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였습니다. 거룩해 보이는 위선은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자신도 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정직한 고백을 기뻐하십니다.

작아 보이는 헌신

헌금에 대한 논쟁이 많은데 항상 본질을 벗어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헌신의 한 방식입니다. 두 사람이 헌금함 앞에서 돈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한 사람은 많은 금액을 헌금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자들은 자기를 위해서는 낭비를 많이 해도 남을 위해서나 하나님을 위해서 인색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 부자는 많은 금액을 헌금했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렙돈 동전 두 개를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우리는 헌금계수 할 때 누가 헌금을 많이 했는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헌신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헌금의 금액이 아니라 헌금의 비율이 중요합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십니다. 십일조는 금액이 아니라 비율을 의미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나의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의 소유가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십일조의 의미입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후손으로 여기지 않고 구주로 여긴 것처럼 우리도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헌신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으로 분별 됩니다.

기도제목

1. 종교적인 거룩함이 얼마나 위선적인 모습인지 깨닫고 그것을 벗어버리고 정직하게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2.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그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헌신을 배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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