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빌라도의 선택

By 2020년 4월 9일 4월 11th, 2020 No Comments

본문: 마가복음 15:1-15
찬송: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바뀐 자리

그들은 이른 새벽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체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수님을 로마 법정에 세우기로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 넘겨집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손에서 빌라도의 손으로, 그리고 다시 빌라도의 손에서 군병들의 손으로.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비명이 들려올 때까지는. 자기 자리에 있을 때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낍니다. 자기 옷이 아닌 옷을 걸치고 살아가는 것은 불편하기 마련입니다. 고향은 언제나 우리에게 편안한 장소입니다. 그곳에 가족이 있고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자기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습니까?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리를 떠납니다. 잔치에 초대받으면 자리를 잘 택해야 합니다. 부끄러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자리를 택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주인이 종의 자리에 있고, 종이 주인의 자리에 있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의인의 자리에 서고 의인이 죄인의 자리에 있을 때 정의는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는 죄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자리에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바뀌지 않는 사람들

인류 역사상 가장 정의롭지 않은 재판이 진행됩니다. 악법도 법입니다. 법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법은 사회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재판은 법에 근거해서 판사가 결정을 하는 자리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그 판단은 매우 개인적이거나 불합리할 수 있습니다. 전쟁 중에는 군법으로 명령을 거역하는 병사에게 즉시 총살이 가능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합리화 하기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인권이 유린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더 악한 정부가 됩니다. 그들이 꿈꾸는 이데올로기는 법 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나중에 보상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완전한 정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재판은 역사상 가장 부당한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재판을 진행할수록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 져 갔습니다. 예수님을 살리기 위한 빌라도의 노력의 흔적이 많이 발견됩니다. 사면할 기회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군중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바라바를 원했습니다. 군중들의 함성은 빌라도의 양심의 소리보다 켜집니다. 미세하지만 변함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역사를 바꿀 것입니다.

기도제목

1. 예수님처럼 더 낮은 곳에 나의 자리를 허락하실 때 기뻐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유혹이 밀려올 때마다 승리하게 도와주소서. 내 삶의 왕좌에 주님이 앉으신 것을 보게 하소서.
2. 공의로운 사회가 되게 하소서. 지금도 힘 없는 자들에게 더 가혹한 세상을 봅니다. 빌라도와 같이 양심의 소리가 아니라 군중의 소리에 비겁한 선택을 하지 않게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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