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By 2019년 4월 4일 4월 10th, 2019 No Comments

본문: 갈라디아서 2:11-21
찬송: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를 위험하게 합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떠나서 안디옥에 와서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공의회가 열렸을 때 바울의 사역이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임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안디옥에 왔을 그때에 그들이 이방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자들이 도착했을 때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방인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얼마나 엄격하게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는 자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와 잡아 먹으라는 음성이 들리자 한사코 거절합니다. 오 주님, 나는 지금까지 이런 것들에 손도 대지 않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이방인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자라고 소문이 나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마음을 읽고 책망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믿음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순종으로만 가능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은 놀라운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자가 됩니다. 복음의 능력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할 때 그 능력은 사라집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서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는 전한 대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바울에게 책망을 받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처럼 살지 않고 자유케 하는 복음으로 살았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상황 윤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상황에 맞추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변명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나는 자유하지만 쓸데 없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피한 것입니다” 바울이 보기에 이것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때문에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렇게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길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로만 가능합니다. 그 의로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수 많은 종교들을 만납니다. 그것이 신에게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안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나를 믿으라. 너희의 행위로 이룰 수 없는 것을 내가 주겠노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길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은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믿음은 나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믿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행위로 구원을 얻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안에 사는 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밖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를 누리고 전하려면 나의 죽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놀라운 믿음의 행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죽고, 나의 죄가 씻겨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시도를 중단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마치 중독성 강한 마약에 중독된 것과 같습니다. 기회만 있다면 믿음에서 돌이킵니다. 그 믿음이 무너집니다. 내 안에 아직도 내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밖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믿어질 것입니다. 내 안에 사는 것이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셨습니다. 이 믿음에 실패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못 박는 것과 동일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1.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의식하며 믿음의 길을 중단하지 않게 하소서.
2. 나의 행위와 나의 의를 의지하는 것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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