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누구에게나 복음은 동일합니다

By 2019년 4월 3일 4월 10th, 2019 No Comments

본문: 갈라디아서 2:1-10
찬송: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평범한 것이 위대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다시 찾은 것은 14년이 지나서 였습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이제 바울에게는 동역자들이 생겼습니다.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한 방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었다면 그곳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많은 사도들이 있었지만 이방인들을 위해서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유대인들 안에서 해야할 일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부르심은 특별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방인들을 위한 사역보다 유대인들을 위한 사역이 인기 종목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준비시키셨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특별한 배경을 가진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복음이 그를 평범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유력한 자들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복음을 전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특별한 사람들에게 평범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전하던 그 복음입니다. 그들은 좀 더 특별한 메시지를 듣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 앞에서 더 특별한 존재는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바울을 위대하게 합니다.

우리의 자유를 엿보는 자들.

복음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합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복음으로 돌아가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디도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동역자로서 그가 유대인들 가운데 결격사유가 없으려면 디도는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섞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디도가 이방인을 향하여 사역할 때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는 달랐습니다. 기존의 사도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전해왔던 복음의 메시지와 다른 삶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울이 디도에게 할례를 요구했다면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바울의 복음을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자유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신념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당신을 다시 얽매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복음으로 자유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기둥같이 여기는 사람.

당시 교회에는 유명하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사람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부르심과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르심이 분명한 사람들은 어깨를 펴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 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으로 충분합니다.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복음은 도리어 공평합니다. 높아진 산은 낮게 하고 낮아진 골짜기는 솟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될 것입니다. 당시에 기둥같이 여기는 사도들이 존재했습니다. 바울은 변방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나중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비굴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바울을 그렇게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에 기둥같이 여기는 사도들은 하나님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사도들이었습니다. 영향력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무명의 신인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셨다면 떳떳하게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사람들은 당신을 몰라도 하나님이 당신을 기둥같이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부르심대로.

주의 동생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이미 교회에서 인정받는 기둥같은 사도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악수합니다. 기존의 기둥같은 사도들의 성숙함이 보입니다. 그들은 이 독특한 배경의 사도를 인정합니다. 자신들과 너무나 달랐지만 그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를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며 이방인에게 나아가게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우리도 각자 다른 자리에서 축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와 교제의 악수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옆에 새로운 교회가 생기면 기쁘지 않습니다. 경쟁 논리에서 피해를 보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대상으로 파이의 몫을 계산하는 시장논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함께 일하십시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곳으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부르심이고 우리를 향한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부르심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기도제목.

1. 복음을 변질시키는 시도를 멈추고 우리를 사용하소서. 우리의 편협한 시각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부르심을 받은 대로 순종하는 사명자가 되게 하소서.
2. 나와 다른 부르심과 은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악수를 나누게 하소서. 나와 기질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하여 행하실 놀라운 일들을 축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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