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마지막 소원

By 2021년 9월 10일 No Comments

본문: 사사기 16:23-31
찬송: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조롱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조롱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입니다. 그것이 나를 잘못된 기쁨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누군가를 더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정말 기쁨을 찾기 원한다면 조롱이 아니라 선한 일을 행하십시오. 진정한 기쁨은 육신의 감정이 아니라 더 숭고한 곳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극적인 기쁨을 위해서 당신을 망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기쁨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당신의 삶을 무너뜨립니다. 사람들이 그 기쁨을 잊지 못해서 중독에 빠집니다. 당신이 헤어 나오지 못할 그곳에서 하나님이 손을 내미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롱을 당하셨지만 한번도 조롱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조롱할 수 있는 권리를 찾는다면 오직 예수님만 가능하실 것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조롱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때 하나님은 더 낮은 곳으로 오셔서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삼손은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원수의 조롱소리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회가 됩니다. 원수가 마음껏 당신을 조롱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좀 더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당신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삼손은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힘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

그날에는 조롱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모였습니다. 삼천명 정도가 삼손을 조롱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좋은 구경거리가 분명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위대한 용사가 재롱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기를 각오한 삼손은 두 기둥을 안고 함께 죽을 각오로 힘을 사용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 살아있을 때 죽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생을 마감합니다. 삼손은 힘이 센 사람의 상징입니다. 블레셋 온 군대가 이 한 사람을 감당하지 못해서 두려워했습니다. 그 힘의 근원을 제거하고 나면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무도 감당할 수 없었던 능력을 소유한 삼손은 연약한 한 여인의 간청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내어 줍니다. 삼손은 가장 연약한 자의 상징입니다. 삼손은 이미 죽음을 경험한 자였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리고 힘을 잃어서 블레셋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삼손은 더 이상 살아있는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그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께 간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삼손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무엇을 위해서 죽겠습니까?

기도제목

1. 조롱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을 기뻐하기 보다 더 숭고한 기쁨을 구하게 하소서.
2. 삼손의 마지막이 다시 위대한 영웅의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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