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또 하나의 창조 족보

By 2021년 1월 12일 No Comments

본문: 마 1:1-17
찬송: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축복을 얻은 것은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신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다린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빨리 키가 크고 싶은 초등학생처럼 조급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의 장성한 분량이 되는 것은 하루 아침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이 축복입니다. 다윗은 왕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너무 왕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무엘에게 찾아와 왕을 요구했을 때 먼저 선택받은 왕이 사울입니다. 그도 한 때는 겸손했습니다. 왕이 되자 정말 왕처럼 되어갔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왕이 걸어간 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의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에게 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들과 맺은 약속대로 입니다. 그 약속이 아브라함과 다윗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일한 소망으로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우리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 족보를 이어가는 일이 또 하나의 위대한 창조 사역입니다.

영광의 이름을 얻은 여인들

메시야의 족보에 이름이 오르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시대까지 14대, 바벨론 포로시대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의 족보가 기록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자들이고 그 선택에 순종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는 이 족보에 존재하던 사람들의 부끄러운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대해 눈이 열려야 그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와 자녀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 영역을 인간이 범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침해하는 엄청난 잘못입니다. 인간의 교만이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에게 생명을 선택할 권한이 있고 태아를 죽이고 살릴 권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복제할 과학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탐욕을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파괴하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파멸의 길로 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복을 얻기 위해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바벨탑의 반역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가능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1.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과 다윗과 같은 왕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나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나를 택하여 부르신 주님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족보에 나의 이름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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