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더 사랑하는 자

By 2022년 1월 27일 No Comments

본문: 눅 7:36-50
찬송: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

예수님은 지금도 누군가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누구라도 그 문을 열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의 집에 들어가 함께 식탁의 교제를 하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자기의 마음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하는 자가 예수님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습니다. 식탁의 교제는 소중합니다. 그곳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기뻐하는 소통이 일어납니다. 바리새인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가셨습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세리의 집에 들어가신 것보다 더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존경 받는 영적 지도자였지만 이미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있던 자들에게는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도 대단할 결심을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마땅히 환영 받아야 할 자리이지만 환영 받지 못하는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을 방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대 받았지만 대접 받지 못하는 자리는 더 불편합니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집에 예수님을 초대했지만 아직 자기의 마음에 예수님을 초대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 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방문하신 이유는 맛있는 저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 문을 열고 들어가 진정한 당신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는 여인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 받으신 예수님은 적대 국가에 방문한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다른 만남을 위해 가셨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향유가 가득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마음 속에 이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입 맞추는 여인이 어떤 죄인인 줄 알았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의 집에 초대한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여전히 예수님의 능력을 시험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예수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아시고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 많은 빚을 탕감 받는 자의 이야기입니다. 누가 더 하나님을 사랑할까요? 더 많은 죄 사함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자기를 알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눈물을 흘리고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바리새인의 집에 찾아간 여인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자기를 손가락질 하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예수님만 보인 것이 분명합니다.

기도제목

1. 예수님을 나의 마음에 초대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과 함께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마음의 문을 더 활짝 열게 하소서.
2. 바리새인의 집에 찾아오신 예수님과 죄 많은 여인이 만났습니다. 더 많은 죄를 사함 받은 여인의 모습으로 주님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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