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누구를 기쁘게 할 것인가

By 2019년 4월 1일 4월 10th, 2019 No Comments

본문: 갈라디아서 1:1-10
찬송: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바울의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이 소명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까? 잘못 살아온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자였습니다. 우리가 방황할 때 가장 안타까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기를 소개합니다. 자신도 예수님의 사도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커다란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도들과 달리 십자가 전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정규 대학을 나오지 못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출신학교를 자랑할 때 바울은 도리어 더 당당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울을 바울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인해 된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사도된 자입니다. 바울을 부르신 동일한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다른 것으로 당신의 부르심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안타까운 현실.

바울은 자기 소개가 끝나자 마자 갈라디아인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책망합니다. 바울이 너무나 놀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전해준 복음을 너무 쉽게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의 변질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어조로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을 그 만큼 사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너무 특별하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강력한 빛을 보게 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핍박하던 자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가 됩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바울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믿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쫓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습니다. 구원이 위태로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강력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깝기 때문이었습니다. 구령의 열정은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누구에게 기쁜 것인가.

좋은 소식은 많이 있습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소식이 좋은 소식이 아니라 나에게 진정한 유익이 되어야 좋은 소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들로 기뻐합니다. 편안한 것을 기뻐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기뻐합니다. 멋진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기뻐합니다. 더 많은 소유를 기뻐합니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기뻐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들을 기뻐합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얻게 될 때 기뻐합니다. 이 모든 선물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다른 복음을 쫓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소식은 우리가 기뻐하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나에게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어야 진짜 기쁜 소식입니다.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목적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좋은 기회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복음을 혼돈스럽게 하는 시도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복음을 변질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이 당해야 할 저주를 분명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든 하늘에서 온 천사든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 자가 다른 복음을 전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천사라도 복음을 변질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려운 이야기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무언가 더해지면 더 좋은 것이 될 줄로 믿은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자기를 위해서 살면 온전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 복음을 전하고 싶다면 누구를 위해서 살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기도제목.

1. 나의 소명을 발견하게 하소서.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분명히 알게 하소서. 사람에 의해서 시작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이 되게 하소서.
2.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서 자유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을 누리고 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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