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예수님의 친구들

By 2022년 1월 19일 No Comments

본문: 눅 5:27-39
찬송: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예수님을 따르는 세리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도 대단하지만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세리도 대단합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처럼 세리였던 레위는 세관의 자리를 버리고 따릅니다. 분주한 삶의 한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 당신은 예수님을 거절하거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택한 사람을 보니 위로가 됩니다. 대단한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더 부족한 자를 부르신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이 겸손하게 오셨기 때문에 그 기준을 조정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비슷한 사람이 서로 어울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의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주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자기의 의견을 표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친구가 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당신의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친구 때문에 자신의 명성에 많은 것을 잃어버릴 것을 각오했습니다. 예수님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버리고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십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신랑과 함께 기뻐하는 사람

예수님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친구가 되느냐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더 분명합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역할과 예수님의 역할이 다릅니다. 세례 요한은 선지자의 역할을,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그 역할을 바꾸어야 더 어울립니다. 예수님은 더 낮은 곳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질 때 아브라함은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우리는 지금도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 고민이 많습니다. 가장 유리한 길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로 오셨습니다. 우리와 친구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함께 기뻐하는 자리에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도 기뻐할 줄을 알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은 다른 것으로 기뻐했습니다. 죄인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것이 그들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금식이 기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에 노예가 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소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1. 나를 부르신 자리에서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게 하소서.
2.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으로 주님을 보지 않게 하소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선택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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