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이해할 수 없는 부르심

By 2019년 6월 25일 No Comments

본문: 예레미야 20:7-18
찬송: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사명자의 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질문이 많습니다. 그 부르심에 갈망이 있습니다. 나를 창조하신 이가 나를 부르시고 나를 사용하신다는 의식없이 사는 것은 낭비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부러워하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더 낮은 곳을 향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작아집니다. 그들이 부럽습니다. 왜 나에게는 그런 부르심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두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그 부르심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자리를 부러워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면 우리는 모두 사명을 가진 자가 맞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속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권유하셨는데 내가 기대한 사명자의 길과 다른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거기까지만 알게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야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모두 회개하고 돌아올 줄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의 강팍한 마음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견고함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자에게 영광은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온 종일 모욕과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한 용사이시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나를 핍박하던 사람들이 넘어지고 나를 건들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편을 떠나지 않게 된다면 말입니다. 사명자의 축복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에 있습니다.

선지자의 탄식.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죄인들은 불평하고 의로운 자는 탄식합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신들의 불순종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의 축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죄인들의 입술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새로운 문을 여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더 외로운 자리에 고립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예레미야는 자신을 향한 저주를 시작합니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라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에 복이 없었더라면,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라면” 예레미야는 돌이키고 싶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하나님께 외치는 것입니다. 욥도 동일한 외침을 던졌습니다. 하나님 이 고난이 왜 나에게 임한 것입니까? 엘리야 선지자도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로뎀나무 아래 쓰러졌습니다. 이 땅에 보냄받은 선지자들은 모두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외친 탄식은 불행의 증거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그 탄식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동일한 탄식 가운데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탄식밖에 나오지 않을 때 찬양으로 결론을 내리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탄식의 기도가 이 세상의 소망이 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1. 나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해야할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명자가 되게 하소서.
2. 이 땅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끝까지 포기 하지 않게 하소서. 탄식이 나오고 눈물이 나오고 돌아가고 싶지만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감당할 힘을 주시고 내 손을 잡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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