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두려움에 갇힌 자

By 2019년 6월 24일 No Comments

본문: 예레미야 20:1-6
찬송: 328장 너 주의 사람아.

어떤 권위.

세상의 권위 앞에서 하나님의 권위가 작아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권위를 허락하신 분이지만 교만한 인간의 눈에 하나님은 한 없이 작아집니다. 세상의 권위는 자리와 권력에 의해서 드러나지만, 하나님의 권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드러납니다.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홀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었습니다. 바스홀은 예레미야의 예언함을 듣고 그를 때리고 옥에 가두게 됩니다. 자신의 권위가 도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동일한 자리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긍휼히 여기며 이렇게 여겼습니다. 왜 침묵하느냐? 나에게 사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내가 너를 놓아줄 수도 있고 십자가에 넘겨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예수님은 빌라도의 권위에 간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의지합니다. 세상의 권위가 우리를 에워싸고 핍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권리와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권위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붙잡고 담대해 져야 합니다. 세상을 판단하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예레미야는 다음 날 자신을 풀어주러 오는 바스홀에게 예언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홀’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바스홀은 ‘자유’라는 뜻입니다. 마골밋사빕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두려움’이라는 뜻입니다. 바스홀은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었지만 하나님은 바스홀을 두려움으로 가두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힘 앞에서 나의 힘으로 대항하려는 유혹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단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담대함을 구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해야할 말을 주실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

하나님의 선지자를 외면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들은 불행하게도 두려움 때문에 더 두려운 상황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너의 모든 친구들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의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들을 볼 것이며” 바스홀은 불행해 집니다.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연약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자는 당연히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을 배워야 합니다. 두려움이 당신을 몰아가지 못하게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직면해야 합니다. 당신을 두렵게 하는 것을 향하여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스홀은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보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그 두려워하던 대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불평하던 백성들이 가나안 정탐을 하고 돌아와 두려워했습니다. 그 두려움이 그들을 삼켜 버린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던 다윗이 될 수 있습니다. 뒤에서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 홍해가 가로 막고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못한다면 결코 그 두려움의 파도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과 함께 함을 믿는 사람을 삼키지 못합니다.

기도제목.

1. 이 세상의 권위에 굴복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권위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쓰임받게 하소서. 믿음의 사람이 이 세상의 권위에 굴복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권위로 넉넉히 이기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2.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극복하고 자유하게 하소서.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 앞에 무릎꿇는 예배자로 서게 하소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주님의 손을 놓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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