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마지막에 웃는 자

By 2022년 11월 29일 No Comments

본문: 시편 35:19-28
찬송: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조롱하는 자들의 기쁨

웃음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존재합니다. 기쁨으로 가득한 웃음은 축복입니다. 염려하는 마음을 사라지게 하고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기쁨으로 성도의 삶을 사는 것은 원수를 낙망케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것은 고난의 여정을 중단하지 않았던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가 고된 사명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기쁨으로 삶을 해석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소유한 것이나 나의 자랑 때문에 기쁜 사람은 분명히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만큼 넓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믿음이 없어서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쁨이 아니라 낙심의 표현입니다. 그 웃음은 나에게 소망이 없다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래의 웃음을 진정한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십니다. 진정한 기쁨의 아들을 허락하십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선물이 분명합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기쁨도 헛된 것입니다. 기뻐할 이유가 아닌 것으로 기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조롱하면서 느끼는 기쁨은 죄악입니다. 조롱하지 마십시오. 함께 울어야 마땅합니다.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서 조롱하는 입을 손으로 막아야 합니다.

조롱 당해도 기뻐하는 사람

조롱할 때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위태롭습니다. 그들이 기뻐한 근거는 상대의 고통입니다. 그들의 실패와 절망이 나의 기쁨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조롱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침까지 뱉으며 조롱했습니다. 어서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도망치는 자리에서 시므이에게 조롱을 당했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은 비겁한 자들입니다. 조롱을 당하는 자들보다 훨씬 조롱을 당할 만한 자들입니다. 조롱하는 이유는 숨겨진 교만 때문입니다. 겸손한 자는 조롱하지 않습니다. 함께 아파할 겁니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조롱하는 이유는 그들의 무지 때문입니다.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에 티끌을 발견합니다. 조롱을 당해도 기뻐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 상황을 바꾸거나 벗어나지 않아도 됩니다. 조롱을 당할 때 하나님은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이 시므이의 조롱을 받을 때 소망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웃지 말고 나중에 웃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웃기 위해서 하나님과 함께 아파하는 자가 되십시오. 조롱하는 자가 되는 것보다 조롱을 당하는 자가 안전합니다.

기도제목

1. 조롱하는 자들의 위험하고 헛된 기쁨을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의 여정을 가면서 누리는 진정한 기쁨을 허락하여 주소서.
2. 주님과 함께 동행할 때 우리를 겸손하게 하소서. 교만과 무지의 헛된 웃음을 벗어 버리고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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