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두 개의 무화과 광주리

By 2019년 7월 5일 No Comments

본문: 예레미야 24:1-10
찬송: 340장 어지러운 세상 중에.

어디로 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이전에 내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선택의 자유가 모두의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를 동일하게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만큼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던 시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더 많이 누린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자유가 가능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완벽한 창조 이후에 에덴동산에서도 자유와 책임의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이미 유다를 점령하고 자기의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습니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의 관료들은 공예가와 세공장이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자의 슬픔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를 잃고 주권을 잃고 왕을 잃은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또 하나의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어디로 가야하는가 입니다. 예레미야의 환상 중에 보인 두 개의 바구니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이 아주 극상품의 무화과가 담겨져 있었고, 또 하나는 썪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무화과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극상품의 무화과는 포로가 된 자들의 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썩은 무화과는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의 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빚으시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제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고난의 땅에서 빚으십니다. 교회는 번영할 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성장합니다. 누구라도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나라를 지키다 전사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자기의 조국을 자기의 힘으로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집센 백성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무너진 예루살렘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두 개의 무화과 광주리의 비유는 사람의 눈에 보기 좋은 것과 하나님의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일치 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십시오.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셨던 것처럼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거룩한 백성을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에게 자기를 아는 마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백성은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그것이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새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이집트로 향했던 자들과 함께 너무 상태가 좋지 않아 먹지 못할 무화과가 될 것입니다. 그때 끌려가는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새 마음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1.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을 택하고 진리를 택하게 하소서. 내 눈에 보기 좋은 것을 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선택하여 극상품의 무화과로 거듭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고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새 출발을 허락하소서. 다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주님만으로 만족한 자가 되게 하소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