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벼랑 끝에 선 사람

By 2022년 1월 15일 No Comments

본문: 눅 4:16-30
찬송: 286장.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예언된 것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자기의 역할을 마치고 메시야의 도래를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 오셔서 예언된 약속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제는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자는 그 약속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사야도 메시야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예언이 이스라엘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정작 그 소망이 성취되는 자리에서 아무런 감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서로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실 때 세상은 기뻐하는 자와 당황하는 자로 나뉠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기뻐하는 자와 복음을 배척하는 자로 나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주의 은혜의 해가 누군가에게는 주의 보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은혜의 해가 선포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은혜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보복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은혜와 심판이 함께 임하는 하나님의 응답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하나님이 어서 속히 응답해 주시기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에 준비된 자가 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원하는 하나님의 응답이 두려운 날로 바뀔 것입니다.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선지자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모두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거나 박해 했습니다. 선지자의 메시지를 들은 자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 기근이 있었습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보냄 받은 엘리야는 그에게 남은 음식을 요구합니다. 끊어지지 않는 양식을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나병 환자들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나병이 치유된 사람은 이방인이었던 나아만 장군 뿐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이방인들에게 먼저 일어나야만 했습니까? 선지자의 고향에서 그들을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그들이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는 예수님이 자기들을 책망하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쫓아내고 벼랑에서 떨어뜨리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한 가운데를 지나 그 자리에서 떠나 가셨습니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벼랑으로 몰고 간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인정하지 못하고 왕을 죽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나그네를 환대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환영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선지자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선지자를 배척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까?

기도제목

1.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응답 받게 하소서. 믿음의 눈이 열려서 주님의 말씀이 심겨지고 열매 맺게 하소서.
2. 약속의 백성들이 선지자를 배척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입니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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