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9:13-34
찬송: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진정한 용기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사실 그의 생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불행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서 사람들은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날 때부터 맹인이 된 것은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원죄가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반복됩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탓을 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죄의 값을 치루게 될 것입니다. 죄는 유전되지만 죄의 책임은 유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이가 시리다고 아들의 이가 시리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이 맹인은 연약한 부모를 두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 기적이 일어난 것을 추궁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가 이제 장년이 되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시오” 소경되었던 사람의 고백은 너무 분명했습니다. 내가 평생 소경이었고 나를 보게 한 사람은 선지가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그에게 다른 대답을 기대했으나 담대한 믿음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의 부모는 연약한 자였으나 아들은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를 고치신 선지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누구의 제자인가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분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죽이려는 마음만 가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나면서부터 맹인된 자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기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그 일을 행한 날이 안식일이라는 사실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맹인입니까? 처음 세상을 보았던 그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들이 맹인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시력을 잃은 자가 맹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예수님의 목적을 드러내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맹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맹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이 기적이 예수님과 상관없다는 고백입니다. 덕분에 그들은 이 맹인의 증언을 반복해서 듣게 됩니다. 이상하게 여긴 맹인은 바리새인들에게 반문합니다. “이미 내가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그들은 배울 수 없는 자들입니다. 믿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누구에게서든지 배울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그들이 안타깝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제자입니까?
기도제목
1. 예수님이 누구인지 분명히 고백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을 증거해야 할 때 담대히 믿음으로 고백할 확신을 허락하소서.
2. 남을 가르치려 하는 태도를 버리고 겸손히 주님께 배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율법 가운데 거하는 모세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은혜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