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아브라함보다 더 큰 이

By 2020년 2월 4일 No Comments

본문: 요한복음 8:48-59
찬송: 449장 예수 따라가며

멸시 받으시는 하나님

사마리아인. 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붙여준 별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귀신들린 자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던 그들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었다면 예수님이 너무 겸손하신 것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예수님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땅히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은 나중에 하나님에게 더 높힘을 받으십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십니다. 모든 무릎이 그의 앞에 꿇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무지를 주목하십시오.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구별하여 특별히 사랑하셨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유대인 때문에 이방인 가운데 모독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 귀신들린 자라고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 멸시를 받으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알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인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무 의롭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의 멸시가 아니라 찬양을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당신의 자리는 어디에 있어야 마땅합니까?

소망의 사람 아브라함

예수님을 멸시하던 사람들의 자부심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선택받은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그렇게 명령하셨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은 여전히 소중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의 뿌리였습니다. 예수님은 멸시를 받으셨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내 말을 지키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진리는 거짓에 직면할 때 도리어 멸시를 당하게 됩니다. 거짓을 믿는 자들은 영적으로 맹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영원히 사는 것을 보장한다고 하니 귀신들린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또 하나의 비밀을 드러내십니다. 아브라함이 보기를 소망하던 사람이 본인이라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나이가 50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인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분명하지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모르던 자들이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소망으로 바라보고 나그네 길을 걸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여 자기 자손 가운데 오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존재하셨습니다. 소망의 사람은 단지 미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소망으로 살아내는 자입니다.

기도제목

1.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은 멸시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 소망으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고 나의 현실과 능력으로 하나님을 제한 하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소망하던 그 날을 우리도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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