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진정한 회복의 시작

By 2019년 5월 17일 No Comments

본문: 예레미야 3:1-18
찬송: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여인.

부끄러움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어 주십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끄러움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끄러운 죄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오해를 받는 것도 못 견딥니다. 우리는 너무 뻔뻔한 죄인입니다. 죄를 범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다른 사람을 부끄러워합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부끄러워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창녀와 같았습니다. 죄악에 익숙해 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부끄러운 자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체면을 잃는 것보다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을 더 안타까워 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잃어버린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하기 위해서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게 될 때 진정한 회복이 시작됩니다. 무너진 영역이 많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시는 아버지께로 돌아오십시오. 돌아온 아들에게 새로운 옷을 입히고 잔치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준비된 예복을 입고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돌아오라.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아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나는 자격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일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나의 실패와 함께 나의 성공도 버릴 때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의 집에서 떠날 때 가지고 나온 노자돈이 아직 남아있어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부끄러워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이 세상이 너무 좋아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습니다. 두 자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타락한 여인입니다. 유다는 나중에 그보다 더 타락한 여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보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께로 돌아와야할 탕자들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우리는 모두 자유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가능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탐욕과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를 결박하고 얽매이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를 떠나 행한 죄악들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당신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할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오십시오.

기도제목.

1. 죄악에 익숙해지고 예배에 익숙해지는 우리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서 살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주님을 자랑하고 세상에서 주님의 자랑이 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아직도 주님께 돌아오지 않은 아들이 되지 않게 하소서. 멀리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가까이에 있었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첫째 아들이 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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