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갈라디아서 4:21-31
찬송: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약속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
율법과 복음은 형제지간입니다.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릅니다. 두 아들이 한 집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함께 나눌 수 없습니다. 합법적인 아내는 한 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여종에게서 났고 한 아들은 자유한 아내에게서 났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율법을 따르지 말고 약속을 따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태어난 아들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믿음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육체를 따라 태어난 아들이 있고 약속을 따라 태어난 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아들의 출생은 아브라함의 결정이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실 약속을 따라 사는 것보다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내 손에 먼저 잡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더 크고 더 놀라운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 없습니다. 당신도 보지 않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종에게 자유는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나 고단할 수 있습니다.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약속의 땅에 도착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여정을 가는 동안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게 됩니다. 종으로 살아온 지난 날을 추억으로 회상합니다. 그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로 고백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성도의 삶의 모습입니다.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종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더 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본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이전에 상상하지도 못하던 것이었습니다.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과 대가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자유가 넘쳐 흘러나게 되면 자유를 빼앗기는 일이 발생합니다. 안타깝게도 다시 종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자들이 많아집니다.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의 종이 되고 싶습니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다른 모든 것을 주어도 자유를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누릴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을 자유케 합니다.
기뻐해야 하는 이유.
시내산과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두 여인을 상징합니다. 하갈과 사라입니다. 하갈은 기구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졌을 때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믿음을 버리고 여종에게로 들어갑니다. 사라의 여종 하갈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하갈은 잠시 얻은 권세를 가지고 자기의 주인을 멸시합니다. 이스마엘은 동생 이삭을 조롱합니다.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대변합니다. 율법은 약속 앞에서 더 큰 소리를 냅니다. 더 확실한 미래를 주겠다고 합니다. 먼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살게 되면 더 많은 열매를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54장 1절의 말씀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이사야는 우리가 즐거워해야 할 이유를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더 많은 자녀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의지하지 말고 믿음을 사용하십시오.
함께 나눌 수 없는 유산.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요구합니다. 여종과 그녀의 아들을 내어 쫓아달라고. 주인이 종의 모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종의 아들이 자유가 있는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합니다. 종의 아들이 자기 아들의 자리를 넘볼 수 없습니다. 여종과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것이 사라의 요구였습니다. 정당한 아내라면 당연히 요구해야할 내용입니다. 당신은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자유를 얻었음에도 그 자유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믿음의 유산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아직도 아들인 줄 몰라서 종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받은 유산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자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지불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여종과 여종의 아들을 내어 쫓아야 합니다. 하갈을 학대한 사라의 요구가 너무 심한 것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물로 받은 자유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제목.
1. 내가 아버지 집에 상속자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노예와 같이 살지 말고 자유한 자로 살게 하소서. 율법 아래, 죄의 종노릇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나의 자유를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2. 믿음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내가 지금 소유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약속하신 것을 붙잡고 살게 하소서. 홀로 사는 여인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인의 자녀보다 많아질 것을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