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하나님의 소망

By 2021년 3월 16일 No Comments

본문: 마 23:25-39
찬송: 423장. 먹보다 더 검은

위선자들의 헛된 수고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언제 파도가 밀려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집니다. 헛된 수고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집을 포기하고 반석 위에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할 때입니다. 위선자들의 수고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본 모습이 추할수록 더 아름답게 회칠을 할 것입니다. 냄새가 많이 날수록 더 강한 향수를 뿌릴 것입니다. 그것으로 가려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모두 헛된 수고입니다. 차라리 용기를 내어서 진실 앞에 서는 것이 현명합니다. 하나님은 겉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보십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눈에 보기 좋은 것을 따라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따라가십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예언자들의 무덤에서 애통하는 바리새인들이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착각과 환상을 독설로 깨뜨리십니다.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책망하십니다. 이 독설은 하나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들이 애통해 하던 선지자들의 목소리입니다. 위선자의 자리에서 헛된 수고를 언제까지 하려 합니까?

하나님의 헛된 수고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기이합니다. 헛된 수고처럼 보입니다. 예언자들을 죽이고 선지자들에게 돌을 던지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품어주십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그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버리고 세상으로 따나간 그 자리에서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믿음의 크기와 비례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너무 힘이 없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꺼질 것 같은 촛불과 같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얼마나 기다릴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좀 더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도 변색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리는 너무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절망 가운데에서 태양이 떠오르게 합니다. 하나님은 헛된 수고를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지금도 헛된 수고를 많이 합니다. 자꾸 하나님을 떠나서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수고를 할수록 손해가 많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어리석은 불순종까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일부분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 인생의 작가이고 감독입니다. 우리의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시고 무너진 당신의 진정한 회개를 기뻐하십니다. 헛된 수고는 지난 날로 충분합니다. 주님과 함께 의미 있는 수고를 하십시오.

기도제목

1. 위선자의 수고가 고달픕니다. 우리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 수고한 헛된 수고들을 버리고 주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지금도 우리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손짓을 거절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거절하며 돌아선 발걸음을 돌이켜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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