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벧후 3:1-9
찬송: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조롱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조롱하기 위해서 막강한 능력이나 지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는 보잘 것 없는 자였지만 다윗의 마음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리어 그의 저주를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성숙함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사람을 조롱하는 시므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더 거룩하고 더 의롭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판단에 하나님조차 함량 미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도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 때를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을 조롱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조롱입니다. 그가 재림하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조롱할 것입니다.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 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당신을 조롱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신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괘씸해서 용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감히 나에게 이런 조롱을 할 수 있는가 단단히 버릇을 고치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당방위와 같습니다. 자격 없는 자가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롱하는 시므이를 만나면 다윗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긍휼이 그들의 조롱에도 흔들리지 않는 당신을 향할 것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들
세상이 성도를 조롱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도 일부러 부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자신의 탐욕을 따라 살고자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시간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그렇게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시간은 너무 소중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처럼 낭비하는 것도 없습니다. 오늘을 소중히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마땅하지만 헛된 것을 구하다 낭비합니다. 그 시간은 당신에게 다시 돌아오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오해하는 사람은 약속의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다고 여길 것입니다. 설마 오늘이 그날이라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은 하루가 소중합니다. 그 사람과 당신의 차이는 죽음을 인식하고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더 늦기 전에 모든 사람이 멸망을 당하지 않고 회개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동시에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조롱하는 자가 아니라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1. 마지막 때에 세상 사람들의 조롱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2. 하나님에게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구원 받은 자로서 영원을 사모하며 주님을 기다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