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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만나는 자리

By 2020년 3월 17일 No Comments

본문: 요한복음 21:1-14
찬송: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삶의 자리

베드로는 원래 어부였습니다. 어느날 만난 한 사람 때문에 아버지도 버리고, 배도 버리고, 따라갔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삼년의 세월을 보낸 것도 특권이었습니다. 그는 충성을 맹세했지만 예수님의 말대로 고개를 들 수 없는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주님을 떠났습니다. 부활의 소식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실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의 절망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해하셨습니다. 그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기다리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실패하고 돌아갈 곳을 아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사명자가 삶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진정한 제자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 삶의 자리에서 다시 제자가 됩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실패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도 실패합니다. 밤새 수고했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습니다. 베드로는 물로 뛰어들어 그분에게 달려갑니다.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주님을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만난 예수님이 더 소중합니다.

식탁의 자리

식탁은 함께 하고 나누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진리를 식탁에서 나누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식탁을 준비하셨습니다.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라. 우리는 여전히 먹고 마시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생명이 붙어있는 한 그럴 것입니다. 식탁에서 만나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친밀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전입니까 아니면 식탁입니까? 성전에는 거룩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정결의식을 지키며 세속에 찌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긴 두루마리로 자신을 감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성전에 거하시기가 힘겨웠던 것이 분명합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굴혈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고 있습니까? 식탁에서 함께 마주 앉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예수님은 문 밖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그 문을 열고 나와 더불어 함께 먹자고 제안하십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문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방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알 수 없는 행복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당신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기도제목

1. 성전에서만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곳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소서. 나의 삶과 예배가 분리되지 않게 하소서.
2. 주님을 두려워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 식탁에서 더불어 먹는 친밀함을 누리게 하소서. 그 식탁에서 세상의 염려를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으로 배부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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