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레미야 25:1-14
찬송: 459장 누가 주를 따라.
듣지 않는 백성들.
하나님의 사랑이 놀랍습니다. 거역하는 백성을 향한 은혜의 손길을 중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호야김 4년 곧 바벨론 왕국의 시작 원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대제국이 출범할 때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심을 다시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결코 중단되지 않음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이미 23년간 선지자의 삶을 살아온 예레미야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아이가 한 마디의 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까? 그들은 더 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역하는 백성을 향하여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듣지 않을 것을 알지만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합니다. 귀머거리에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듣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랜 투병기간에 임종을 앞두고 있는 분들을 심방할 때가 있습니다. 이미 의식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소망을 가지고 천국의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들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박한 상황에서 기적을 바라지만 사실 더 큰 기적을 바라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듣지 않는 백성들에게 쉬지 않고 말씀하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을 배웁니다. 거역한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닮아가기 원합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의 열매는 그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복음이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듣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는 것이 소중합니다.
하나님의 분노.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다른 신들을 추종하던 발걸음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사랑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분노는 자기 의에 근거합니다. 분노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매표소에서 자기 순서보다 새치기 하는 사람을 보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운전을 하다가 얌채같이 끼어들기를 하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대상은 다를지라도 분노의 근거는 동일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사람들의 분노로 싸움이 일어나고 고소가 발생하고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리와 영광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길을 잃고 우상 앞에서 절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은 죄인들이 조금 더 악한 일을 하는 것과 다릅니다. 다윗이 범죄하므로 사탄이 송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곤란하게 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때문에 더 큰 분노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분노도 없을 것입니다. 소망도 없고 기대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그 말씀에 경청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나 스스로 들을 수 없다고 포기하지만 우리에게 보내시는 선지자와 말씀하시는 주님을 통하여 소망을 발견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게 하소서.
2. 우리의 분노를 처리해 주소서. 나의 기준으로 분노하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분노를 배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는 삶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라 사랑을 더 경험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