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감당할 수 없는 사람

By 2020년 11월 21일 11월 25th, 2020 No Comments

본문: 다니엘 3:13-23
찬송: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이제라도

왕의 권한은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같습니다. 그 명령을 어기는 것은 반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순종을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을 점검해 보십시오. 말라기에서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불성실을 발견합니다. 너희가 지금 나에게 드리는 제물을 너희의 왕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희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왕은 눈 앞에 살아있는 권력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절하지 않는 다니엘의 친구들을 향하여 사실을 확인합니다. 너희가 나의 명령을 어기고 절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내가 세운 금신상에 절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자비를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자비를 구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비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도 빌라도는 자비를 베풉니다. 내가 너를 놓아줄 권세와 풀어줄 권세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말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기억 속에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돌이키라는 말은 다니엘의 친구가 아니라 느부갓네살 왕에게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내 눈에 좋은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양쪽에 세웁니다. 언약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실 축복과 언약을 저버린 자들에게 내리실 저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축복과 저주 두 가지 선택의 기회들은 하나의 선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축복을 위한 것입니다. 성도가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축복과 저주를 모두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 만을 구합니다. 고난을 통과한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의 유익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벨론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던 다니엘의 친구들은 왕의 호의를 거절합니다. 진정한 왕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왕이시여 우리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왕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불구덩이에서도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이라고 믿음습니다. 이 믿음이 대단합니다. 느부갓네살의 분노는 풀무불을 평소의 칠 배나 뜨겁게 했습니다. 세상의 분노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 선택하십시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을 버리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당신을 어떻게 대합니까?

기도제목

1. 세상의 호의에 감동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자비를 구걸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하나님께 감사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이미 충분한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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