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표적에서 언약으로

By 2025년 1월 14일 No Comments

<표적에서 언약으로>
본문: 요한복음 4:43-54
찬송: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갈릴리는 예수님의 고향입니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 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이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첫번째 이적과 두번째 이적이 일어난 곳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변한 곳이 갈릴리 가나였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에 걸려 가버나움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신하에게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책망 하셨습니다. 너희는 표적이나 기사를 보지 않고서는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표적으로 진정한 믿음이 생기지 않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세대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에 환호하는 것 뿐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는 아직도 하나님이 아니라 표적을 구합니다. 요나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삼키는 물고기의 등장입니까? 아니면 니느웨의 회개입니까? 니느웨의 회개를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는 요나가 불신의 세대에 표적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표적이 아니라 언약에 근거해야 합니다. 표적이나 기적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 이뤄집니다. 그 기적으로 우리는 잠시 기뻐할 수 있지만 믿음을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적입니다. 미성숙한 신앙은 늘 표적을 갈망합니다. 성숙한 신앙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실 능력이 없어서 기적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그 분이 아버지의 집에서 목수로 일할 때에 기적으로 가구를 만들지 않으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가장 큰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표적이 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하나님의 표적이 되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언약으로 가능합니다.

기도제목.

1.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에서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났지만 그들에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신 주님의 의도를 알게 하소서.

2. 기적 때문에 환호하는 군중이 되기 보다 믿음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처럼 우리도 이 세대에 표적이 되기 위해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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