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2019년 12월 9일

내가 속히 오리라

본문: 요한계시록 22:1-11 찬송: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저주와 밤이 다시 없겠고 새 예루살렘에서는 어린양이 빛을 비춤으로 해와 달의 비춤이 쓸데 없게 됩니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성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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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2019년 12월 7일

처음 것은 다 지나갑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21:1-8 찬송: 180장 하나님의 나팔 소리. 또 하나의 신부 하나님의 은혜는 이 모든 일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거룩한 신부로 신랑을 기다리는 자입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로부터 내려올 때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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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2019년 12월 6일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

본문: 요한계시록 20:7-15 찬송: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흔들리지 않는 나라. 하나님의 원수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천사들이 반역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한 피조물을 향하여 너무 많은 선물을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피조물은 어떻게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을 대적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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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2019년 12월 5일

천년왕국의 축복

본문: 요한계시록 20:1-6 찬송: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신 거룩한 갈망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을 하기 전에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완전한 통치입니다. 이 일을 처음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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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2019년 12월 4일

거짓과 진실의 대결

본문: 요한계시록 19:11-21 찬송: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이름.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그 이름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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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2019년 12월 3일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준비하라

본문: 요한계시록 19:1-10 찬송: 96장 예수님은 누구인가. 이 땅에 공의가 있는가. 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경험하는 것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공의로운 재판장이 있다면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일을 하나님이 더 견디기 어려워 하십니다. 음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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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2019년 12월 2일

무너질 바벨탑을 쌓지 말라

본문: 요한계시록 18:9-24 찬송: 255장 너희 죄 흉악하나. 무엇을 쌓을 것인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바벨탑을 건축합니다. 하나님이 무너뜨리신 바벨탑은 교만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다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바벨탑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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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2019년 11월 30일

하나님의 뜻은 이뤄집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17:9-18 찬송: 346장 주 예수 우리 구하려. 짐승의 머리는 일곱개이고 그 뿔은 열개입니다. 음녀가 앉아있는 일곱산은 당시에 교회를 핍박하던 로마제국을 상징합니다.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열 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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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2019년 11월 29일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

본문: 요한계시록 17:1-8 찬송: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성적인 죄가 만연할 때 그 사회가 멸망할 때가 된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음녀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지금도 이 시대 구석구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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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2019년 11월 28일

도둑같이 임하게 될 그날

본문: 요한계시록 16:10-21 찬송: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필요한 고통을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수술대 위에서 환부를 드러내고 칼을 대는 것을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많은 치료제는 더 큰 고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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