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9:17-27
찬송: 269장 그 참혹한 십자가에
내가 쓸 것을 썼다
예수님의 죄패를 두고 마지막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빌라도는 죄패를 십자가에 남겼지만 사실은 역사에 남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무대가 준비되었습니다. 양 옆에는 강도 두 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죄패가 삼개 국어로 쓰여졌습니다.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 이 죄패는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말로 기록됩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시대에 남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찾아와 요구합니다. 그 죄명에 “자칭”이라는 말을 삽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했던 이유였지만 그것이 그의 죽음의 제목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습니다. 빌라도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죄수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왕으로서의 죽음을 맞이 하십니다. 이 땅에 오실 때는 너무 겸손하셔서 마굿간에 임하셨지만, 이 땅을 떠나실 때에는 십자가의 죄수였을지라도 유대인의 왕으로 죽으셨습니다. 유대인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유대인의 왕,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완성됩니다. 그것이 마침내 왕이 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예수님의 옷을 나눠가진 병사들은 그 옷을 네 개의 조각으로 찢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속옷까지 챙기려 하지만 찢지 않습니다. 제비를 뽑습니다. 예수님은 무자비한 원수들에게 둘러싸여서 표현할 수 없는 치욕을 받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곳에 자비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소망도 없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던 여인들을 소개합니다. 그 가운데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자기의 아들이었기에 사랑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그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마리아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사도요한에게 마지막 부탁을 합니다. 내 어머니를 부탁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를 탄생케 하십니다.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족이 탄생되는 것을 봅니다. 십자가는 새로운 가정과 교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자가 어머니가 되고 아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당신에게 맡기신 어머니와 아들은 누구입니까?
기도제목
1. 주님이 나의 왕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모든 나라와 민족의 왕이 되시도록 그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고통스런 주님의 마지막을 바라보아야 했던 마리아의 고통을 알게 하소서. 십자가 앞에서 가족으로 섬겨야 할 자들을 기쁨으로 섬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