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가보지 않은 길

By 2019년 11월 11일 No Comments

본문: 요한계시록 6:1-8
찬송: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가보지 않은 길, 가지 않아도 될 길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들이 있습니다. 인으로 봉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봉인을 뗄 사람이 없어서 요한은 울어야 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그 인을 뗄 수 있습니다. 어린양이 일곱 개의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재앙이 시작됩니다. 첫번째 인을 뗄 때 흰말이 활과 면류관을 가지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 했습니다. 죄악이 우리를 파괴할 때 이런 일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원수는 우리 삶을 삼키고 정복하려고 하는 자와 같습니다. 거침이 없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약체인 한국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징기스칸은 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제국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들의 소문이 먼저 움직인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징기스칸의 군대를 보기도 전에 백기를 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금지한 일이 존재합니다. 손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지 않았을지라도 선악과에 손을 데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나서 우리는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길은 가지 않아도 될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보지 않은 길로 우리를 다시 초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길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

두번째 말은 붉은 말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재앙의 도구는 칼입니다. 땅에서 평화를 걷어내고 서로 죽이게 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서로 원수가 되어서 죽이는데 혈안이 됩니다. 분열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의 증오가 시작됩니다. 마땅히 죽일 자로 여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붉은 말을 탄 자 때문입니다. 세번째 말은 검은 말입니다. 이 말을 탄 자의 손에는 저울이 들려있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기근과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어진 것입니다. 전쟁으로 성 안에 갇혀서 음식이 귀하게 된 것입니다. 이 비극의 마지막에는 자기의 자식을 잡아먹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성문을 열면 풍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남겨놓은 양식이 있다는 것을 알라고 하십니다. 네번째 말은 청황색 말입니다. 그 말에 탄 자의 이름이 사망입니다. 그의 뒤에는 음부가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서 보낸 곳이 이곳입니다. 지옥에서 우리를 건지신 것입니다. 그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가진 자가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의 사분의 일을 죽입니다. 그 권세가 어디에서 주어졌습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사망의 권세보다 더 위대합니다. 누구에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까?

기도제목

1. 우리의 죄악 때문에 가지 않아도 될 길을 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를 그 재앙에서 건져 주소서. 십자가의 길을 갈 때 주님을 더 신뢰하며 따라가게 하소서. 가보지 않은 길을 믿음으로 가게 하소서.
2. 활과 칼과 저울을 가지고 우리를 두렵게 하는 세력에서 우리를 건지소서.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나를 삼키려하나 십자가의 어린양이 건져주실 것을 소망으로 붙잡게 하소서. 사망의 그늘 아래에서 구원하시는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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