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

By 2019년 10월 14일 No Comments

본문: 레위기 22:17-33
찬송: 449장 예수 따라가며.

무엇이 아까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제사를 원하십니다. 제사는 온전하지 못한 죄인들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 은혜는 온전한 제물을 준비함으로 주어진 기회입니다. 그런데 그 기회마저 놓치게 되는 것이 온전하지 못한 예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서원제물과 자원제물로 바치려거든 흠 없는 수컷을 드려야 했습니다. 흠 있는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모욕하는 제사를 드리게 됩니까? 아까워서입니다. 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까워질까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헌금에 대한 오해도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원하는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자원하는 예물을 드릴 때 가장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까웠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그들은 초대교회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재산을 드리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령님을 속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여인의 예물을 아까워한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왜 아각왕의 목숨과 값비싼 소와 양을 남겨두었을까요? 그것들을 죽이기 너무 아까워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에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기쁨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기쁨을 알지 못하고 드리는 제물은 모두 아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물을 주님이 받으십니다.

삶의 자리에서 예배자가 되라.

“수소나 염소나 양이 나거든 이레 동안 그것의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여덟째 날 이후로는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리라”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기 위해서 우리가 고려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피조물의 본능을 거스르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같은 날 어미와 새끼를 잡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동물일지라도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새끼를 빼앗긴 어미의 고통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동일합니다.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인륜을 저버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고르반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선을 원하시지만 삶의 자리에서 마땅히 지켜야할 것을 버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린 거룩한 음식을 먹을 때에 다음날 아침까지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눠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이웃과 더불어 나누며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분명히 함께 나누어야 할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나 혼자 소유하려고 하는 시도는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백성으로 그 시냇물을 막아서 불행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별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지만 거룩한 백성의 사명은 그 축복을 나누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벽을 허물어 세상으로 나아가 축복을 나누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우리가 드리는 예물을 아까워할 때 내 안의 탐욕과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깨뜨려 주소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자원하여 예배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삶의 자리에서 예배하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마땅히 배려해야 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나누기 위해서 장벽을 허무는 용기를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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