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

By 2019년 4월 18일 No Comments

본문: 요한복음 18:28-40
찬송: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

너무나 거룩한 죄인들.

예수님은 가야바의 집에서 로마 총독의 관저로 옮겨졌습니다. 이유가 놀랍습니다. 무죄한 사람을 죽이면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서 이방인의 총독의 관저에는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위선이 없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거룩한 살인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거룩한 죄인들이 많습니다. 누군가를 정죄할 때 우리의 모습입니다. 온라인 상에서 사회적인 살인선고가 내려집니다. 물론 그들이 의로운 행위를 한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명백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들을 더 견디기 힘겨워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때로는 오해로 드러납니다. 가짜 뉴스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미 그 사람에게는 분홍 글씨가 찍혀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 배후의 세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죄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서슴치 않고 사람을 죽이는 말을 합니다. 익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죽인 자들과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누구인가.

빌라도는 예수님을 넘겨 받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을 죄를 짓지 않은 것이 너무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눈에는 마땅히 죽어야할 죄인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너희가 너희들의 법대로 재판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사실 유대의 율법에는 죽음에 해당하는 죄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거룩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죄를 받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는 의도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아니라 세상 권위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소리를 이방인의 입에서 듣게 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이 말을 네가 스스로 한 것이냐 아니면 누가 너에게 알려준 것이냐고. 당신의 왕은 누구입니까? 그 왕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그 대답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 것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대답하면서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약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종들이 싸워 유대 사람들이 나를 체포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내 나라는 지금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적지에 홀로 들어와 십자가로 향하십니다.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제자들의 도움도 없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와의 대화 가운데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너의 말대로 내가 왕이 맞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이 세상은 거짓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진리 가운데 살려고 한다면 당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자입니다.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 가운데 거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기로 결단하면 이 세상의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이 세상에 속한 나라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찾고자 한 것.

빌라도의 마음에 어떤 갈망이 보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찾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치 수사관이 범죄 현장에서 증거를 찾는 것처럼 집요한 질문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심문하여 “죄”를 찾았지만 빌라도가 찾은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였습니다. 그가 결론 내린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겠노라” 그리고 소란을 일으키는 유대인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유월절에 죄인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는데 너희들을 위해서 유대인의 왕을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들은 더 목소리를 높여서 그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요구합니다. 바라바는 강도였습니다. 빌라도가 찾은 것을 우리가 못찾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빌라도처럼 예수님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왕을 보아야 합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유대인들이 죽인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 백성이 자기 왕을 죽인 것입니다. 빌라도가 찾은 것을 그들이 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마지막 기도를 하십니다. 주님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기도제목.

1. 차라리 죄인이었으면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거룩한 죄인들이 많아집니다. 주님 앞에서 위선을 버리고 나의 더러움과 부끄러움을 드러내게 하소서. 의인의 모습이 아니라 죄인의 모습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2. 예수님의 나라에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나라를 세우게 하소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소서.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진리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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