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배신자와 함께하는 식탁

By 2019년 2월 12일 4월 10th, 2019 No Comments

본문: 마가복음 14:12-21
찬송: 295장 큰 죄에 빠진 나를.

지시하는 곳으로.

순종은 우리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로 먼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방식은 한 가지입니다. 지시하시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준비하고 길을 떠납니다. 준비하지 않고 떠나는 길은 고됩니다. 알지 못하는 길을 가는 것은 항상 두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그 길 위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나아갈 때 더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더 분명히 들리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더 분명히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그 데이트를 즐기고 싶으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내가 알고 가는 길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더 안전한 길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길은 우리를 바꾸고 변화시키시는 길입니다. 그 길의 종착지에서 예수님을 만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배신자와 함께하는 식탁.

제자들은 예수님이 지시한 대로 순종합니다. 그것이 제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서 준비해야했습니다. 이 때도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나귀새끼를 준비하신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성안으로 들어가서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가 들어가는 집이 예수님이 정하신 장소입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우리가 사용할 방을 달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약을 해 놓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보냄받은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신자의 마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보내는 유월절의 밤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함께 구원받은 기쁨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역할은 피흘려 죽게되는 유월절의 어린양입니다. 고통스러운 역할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입니다. 예수님은 그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배신하는 제자의 길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아니겠지요.

우리는 자기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았더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누가 배반할지 그 방에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자기는 아니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에서 예수님과 유다만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설마 저는 아니지요? 한 사람씩 모두 돌아가며 예수님에게 확인했습니다. 물론 유다도 물었을 것입니다. 유다는 끝까지 가면을 써야 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팔고 은 삼십을 받은 뒤였습니다. 예수님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계셨지만 끝까지 범인을 밝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롯 유다가 돌아서기를 말입니다. 나는 아니겠지요? 이것은 단지 제자들의 바램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악한 길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식탁에 앉을 때가 있습니다. 돌이키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나쁜 죄인인가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다지 놀라지 않으십니다. 돌이키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하십니다.

배신자의 길.

인자의 길이 있고 배반자의 길이 있습니다. 둘 다 고난의 길로 들어섭니다. 둘 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길에서 배반자를 아파하십니다. 배신당한 아픔 때문이 아닙니다. 배반자의 멸망당함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인자는 성경에 기록한 대로 가겠지만 인자를 배반하는 자는 화가 있을지어다. 그는 차라리 이 세상에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배신자와 함께 하는 식탁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배신할 궁리만 하느라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태연하게 예수님의 포도주에 떡을 찍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지금이 어쩌면 당신에게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나는 아니겠지요 라고 물으면서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면 주님의 눈물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유월절 식탁은 그를 위한 예수님의 배려였습니다. 가롯유다는 이미 사단으로 가득하여 예수님을 팔아넘길 기회만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이 돌아설 기회만을 찾았습니다.

기도제목.

1.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기쁨을 허락하소서.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예수님과 함께 걷게 하소서. 주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기쁨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행보가 이어지게 하소서.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되게 하소서.
2. 주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향하여 하시는 음성에 직면하게 하소서. 주님을 향하여 등을 돌리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돌이키게 하소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