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전도의 열정을 회복하라

By 2023년 8월 25일 No Comments

본문: 사도행전 26:24-32
찬송: 498장. 저 죽어 가는 자 다 구원하고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베스도가 기대한 것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바울이 해야 할 말은 자기를 변호하든지 아니면 자기를 송사하는 자들의 오류를 증명하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어쩌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모함하고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겸손의 언어로 표현하셨을 뿐입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는 빌라도에게 네가 지금 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는 예수님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자신에게 왕을 증명하거나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도 하나님을 향하여 교만한 자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베스도 앞에서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베스도는 고소를 당한 자의 변명을 듣고 싶었는데 그것보다 더 확실한 복음의 메시지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책망합니다. 네가 미쳤다고. 너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다고 외쳤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세상의 구석에서 일어난 일처럼 보이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의 모든 증언은 그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바울이 증명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결백이 아니라 이 위대한 십자가의 진실이었습니다.

나처럼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의 고백은 힘이 있었습니다.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베스도에게까지 복음의 영향력이 전해진 것이 분명했습니다. 바울의 변명을 기대했던 총독은 반문합니다. 네가 당돌하게 이 짧은 시간에 나까지 전도하려고 하느냐고. 바울의 열정은 피고인의 자리에서 재판장의 삶을 바꾸기 원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문화적인 장벽을 넘고 이해의 문을 열기 위해서 넘어가야 할 장벽이 높지만 실제로 복음의 능력은 이 모든 장애물이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복음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만 전해질 수 있다고 바울은 믿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믿었습니다. 십자가의 도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설득은 계속됩니다. 자신을 미친 자로 여기는 베스도 앞에서 나의 정신이 온전하고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선언입니다. 베스도는 재판장의 자리에서 바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자였습니다. 바울은 피고인의 자리에서 죽음의 속박에서 그를 자유케 해 주기를 갈망하는 구원의 기회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베스도는 바울에게 무죄를 선고했을 것입니다.

기도제목

1. 나의 자리에 어디이든지 상관없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게 하소서.
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할 전도의 열정을 회복시켜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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