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14:19-28
찬송: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하나님의 나라와 고난
복음에 저항하는 유대인들의 존재는 교회 안밖에 존재했습니다. 그들의 전통과 틀로 복음을 수용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분명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좋을수록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 안에서도 여전히 유대인의 전통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를 만나야 했던 베드로가 여러 곳에 있었던 것이지요. 유대인 가운데 몇 사람이 안디옥으로 내려와 이방인들이 세운 안디옥에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모세가 가르친 관례를 따라 이방인 가운데 믿는 자들도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할례를 받는 것은 유대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역사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논쟁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그들의 결론에 따르자는 것까지 동의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으로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했는데 이제는 믿음의 본질을 증명하기 위한 증인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이방인들의 사도였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의 믿음에 대한 예루살렘의 결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전의 전통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예수의 은혜를 통한 구원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마치고 내린 결론은 이전에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알려주신 메시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동일한 성령과 동일한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율법으로 세상과 구별된 자라는 선민사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제 모세의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언약의 조건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언약의 증표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을 깨뜨린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할례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은혜의 증거입니다. 그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은 자들에게 믿음이 아니라 할례의 전통을 주장하는 것은 은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베드로는 이제 이 할례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새로운 복음을 선언하는 자가 됩니다. 우리 조상이나 우리가 질 수 없었던 무거운 짐을 왜 이방인들에게 지우려 하느냐.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임을 주장합니다. 유대인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가장 어려운 자가 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은혜가 아니라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은혜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자유한 자입니까?
기도제목
1. 내 안에 비 본질적이고 오래된 신앙의 전통이 복음의 능력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하소서.
2. 누구라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기쁨으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