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24:1-12
찬송: 165장. 주님께 영광.
빈 무덤으로 달려간 사람들
안식을 온전히 지킨 여인들이 이른 새벽 빈 무덤을 향하여 먼저 달려갔습니다. 그 자리를 여인들에게 빼앗긴 제자들은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가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까? 먼저 무덤을 향하여 달려간 사람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삶이 바뀌고 목적도 바뀌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제자들과 예수님의 필요를 자신의 것으로 채웠습니다.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도 아름다운 헌신의 발걸음이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은 빈 무덤에서 천사를 만나고 산 자를 왜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책망을 듣습니다. 사실 그것은 책망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 됩니다. 이른 새벽 빈 무덤으로 먼저 달려간 사람만 알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먼저 듣게 된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와 전해 듣는 자의 기쁨이 다릅니다. 전하는 자가 훨씬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듣는 자들에게 그 말이 어떻게 들릴지 확신 할 수 없지만 전하는 자들에게 넘치는 기쁨이 없이는 복음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나중에 그 소식을 듣고 제자들은 잘 믿지 못하고 오직 베드로만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가 먼저 주님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빈 무덤에서 달려온 사람들
부활의 소식은 빈 무덤을 보았던 자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전해준 소식이 놀랍게도 이천 년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들려진 것이 놀랍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빈 무덤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자기의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전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자이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두려워서 그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우아한 말로 복음을 전해도 능력이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의 전파는 복음 자체의 능력에 의해 진행되어 온 것이지 당신의 열심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음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금도 당신을 빈 무덤으로 향하게 하고 그 빈 무덤에서 땅 끝까지 달려가게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교비와 탁월한 언어 능력과 나의 헌신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경험하고 함께 증거하는 것입니다.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부활의 증인은 부활을 체험한 자들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전하는 부활의 메시지 안에 당신의 죽음을 분명히 하십시오. 부활은 주님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제목
1.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드러내게 하소서. 옥합을 깨뜨린 여인, 빈 무덤에 이른 새벽 가장 먼저 달려간 여인들의 모습이 되게 하소서.
2.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 주님의 십자가임을 고백합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