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이제는 잠잠하라

By 2021년 12월 13일 No Comments

본문: 욥 33:14-33
찬송: 531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관심이 없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된다는 것은 나의 능력과 논리로 그 원인과 결과를 헤아릴 수 있을 때 하는 말입니다. 기적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입니다. 은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내가 이해되어야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진정한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해는 우리의 믿음을 돕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존재는 진짜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통과 질병을 통해서 우리의 한계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고난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과 논쟁하듯이 하나님과 논쟁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깨달음을 위해서 돕는 자들이 많습니다. 천사가 당신을 돕고 선지자가 당신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믿지 못하고 거부하는 당신을 하나님은 은혜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많은 실수를 범합니다. 바벨탑을 쌓고 교만한 자의 자리에 앉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자기 자신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의 증거가 되지만 이 땅에서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처럼 영원할 수 없습니다. 악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이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보다 의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지 모릅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한 의인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그의 고난을 용납하기 어렵게 했습니다. 지금도 당신이 고민 가운데 휩싸인 이유는 당신이 행한 작은 선행과 의로움 때문일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을 이해할 수 없어서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욥은 고난 가운데에서 회복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침묵하시는 하나님으로 도리어 죽기를 갈망합니다. 그래도 잠잠할 수 없었습니다. 죽을지언정 내가 옳고 내가 화를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을 새롭게 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은 언젠가 허락하실 영원한 나라의 입성 뿐만 아니라 오늘의 삶에서 우리를 회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1.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나의 믿음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죄의 결과로 무너진 삶의 영역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나의 의로 무너진 믿음의 터를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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