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

By 2021년 11월 10일 No Comments

본문: 욥기 21:17-34
찬송: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악인의 번성

화려해 보이지만 공허한 것들이 많습니다. 악인들의 번성과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들은 행복해 보여도 실상은 공허합니다. 행복을 자랑하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보여주는 행복은 진짜가 아닙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더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자가 더 큰 소리를 내는 법입니다. 악인의 소유는 헛된 안개와 같습니다. 어느 날 사라질 것을 의지하여 살 수 없습니다. 더 큰 자극을 원하고 더 많은 높은 곳을 원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욥의 눈에는 악인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악인의 모습보다 자신의 모습이 훨씬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이 때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때가 정말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믿음의 시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때문에 믿음의 시력이 쇠약해 지지만 고난이야 말로 진짜 믿음의 눈을 열어주는 축복입니다. 믿음은 당신의 한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당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큰 믿음의 장애물이 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악인의 번성함을 보고 악인의 종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속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자들의 위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론에 능숙한 자가 실전에서 아무 힘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위로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마음을 위로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흑암 가운데 더듬어 길을 찾는 자와 같습니다. 마음을 위로하기 전에 먼저 그 마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더 많이 위로합니다. 위로하는 행위 자체로 자신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 받는 자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는 어떤 말로도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 같지만 거짓을 이야기하는 자입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자 인지를 드러내는 증거가 될 뿐입니다. 위로의 말을 하기 전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너지고 깨어진 마음으로 마음을 느끼십시오. 무지한 자는 자기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 지를 알지 못합니다. 스스로 정답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의 위로가 유리와 같이 깨어지기 쉬운 당신의 마음을 거칠게 다룰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보고, 무너진 마음의 고통을 헤아립니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1. 악인의 등불이 꺼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욥의 모습이 되지 않게 하소서. 악인의 종말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주소서.
2. 어리석은 자들의 위로를 기대하지 않게 하소서.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획과 고통 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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