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진정한 소망

By 2021년 10월 29일 No Comments

본문: 욥기 14:13-22
찬송: 386장. 만세 반석 열린 곳에

나를 스올에 감추소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어리석은 곳으로 피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살리기 위함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피하고 싶은 곳이 죽음이었습니다. 욥은 아직 부활의 소망을 알지 못하는 자였기에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 수 있겠느냐고 질문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죽고 나서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죽음의 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하지만 다시 부활의 시간에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욥은 죽음 뒤에 자신을 숨기고 싶어했지만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파하신 분입니다. 욥은 창조주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소망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을 소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의 권세를 파하고 부활의 승리를 당신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 절망의 크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죽음의 권세보다 더 큽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곳이 당신에게 진정한 소망이 시작되는 장소입니다.

사람의 희망을 끊어 주소서

하나님은 당신에게 진정한 소망을 주기 위해서 완전한 절망으로 인도하십니다. 진정한 소망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헛된 소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도박판에서 많은 돈을 잃은 사람들의 소망은 다시 그곳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원수는 당신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데 명수입니다. 그 헛된 소망을 버려야 진정한 소망이 시작됩니다. 욥은 지금 고통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정한 소망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을 때 바로는 그 완악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의지할 대상이 남아 있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그 순간에 여전히 당신이 호흡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절망케 하기 위해서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진정한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고난도 허락하십니다. 죽음이 당신을 숨겨줄 수 없습니다. 육신의 고통을 통과한 연단이 당신에게 견고한 땅을 예비해 줄 것입니다. 사람의 희망이 사라질 때 하나님의 소망이 시작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어리석은 곳으로 피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하게 하소서.
2. 헛된 소망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고난이 예비한 소망의 선물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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