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욥기 14:1-12
찬송: 487장.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소생하는 만물
욥의 절망은 인생이 너무 허무해 보이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미래의 소망도 희미해 졌습니다. 현재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욥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용기가 믿음입니다. 죄인의 본능은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는 것입니다. 가능하지 않지만 죄인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을 줄 압니다. 이제 욥은 절망스러운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만물 가운데 소생하는 것들을 통해서 소망을 붙잡습니다. 나무는 베일지라도 다시 싹이 돋고 부드러운 가지가 나옵니다. 나무에게는 희망이 있지만 자신에게는 희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뿌리가 늙고 땅에서 죽을지라도 물 가운데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운 삶을 얻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꽃처럼 시들며 풀처럼 마르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는 존재로 보였습니다. 여인에게 태어난 인생은 너무 짧고 걱정으로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고통 가운데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선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때문에 당신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절망
생의 고난이 아무리 커도 죽음의 절망보다 크지 않습니다. 욥이 인생을 저주하고 죽음을 사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죽음 이후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 소망이 없다면 이 땅에서 삶은 욥이 경험한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고통을 외면하고 싶어서 세상에 집착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지만 깨어지기 쉬운 유리잔과 같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호흡에 있습니다. 그 숨을 멈추면 더 이상 생명의 순환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죽음과 잠의 차이는 다시 깨어 일어날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식과 활동을 멈추고 잠들어 있는 순간에 죽음을 경험하고 아침에 일어날 때 생명을 다시 얻게 됩니다. 부활의 소망은 진정한 오늘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잠들어 있던 자가 잠에서 깨어나듯이 하나님의 시간에 다시 하나님의 시선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깨우시는 분입니다. 이제 죽음 같은 절망의 잠에서 깨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십시오.
기도제목
1. 만물을 소생시키는 분이 계십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도 물가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는 것처럼 믿음의 눈으로 나의 죽음을 보게 하소서.
2.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소망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피하지 않는 모습으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