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화해의 조건

By 2021년 8월 2일 No Comments

본문: 빌 1:15-25
찬송: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용서의 유익

용서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용서의 근거를 상대방에게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의 의무를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용서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은혜의 상징입니다. 용서 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더 큰 기쁨을 주기 원하십니다. 용서하는 기쁨입니다. 천국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 용서의 경험을 요구합니다. 용서 받은 경험과 용서한 경험입니다. 두 가지 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동역자인 빌레몬에게 두 가지 천국의 기쁨을 모두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통하여 용서 받는 자의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옥중에서 복음을 들은 것이고 선물 같은 만남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에게는 아직 채무가 남아있었습니다. 바울은 두 사람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에게 동일한 선물을 하기 원하십니다. 용서 받는 기쁨과 용서 하는 기쁨입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잃었던 자입니다. 물론 빌레몬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었습니다. 잘못은 오네시모의 몫이었습니다. 이제 용서함을 통하여 빌레몬은 사랑하는 형제를 얻게 됩니다. 용서는 당신을 부요하게 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축복의 선물입니다. 당신도 그 선물을 이미 받은 자입니다.

순종의 유익

바울은 빌레몬의 승락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순종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빌레몬은 바울에게 빚진 자였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빌레몬에게 의무로 이 일을 승낙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습니다. 부탁하고 대가를 지불하려고 합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네시모의 몸 값을 받았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들만 할 수 있는 거래를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 사이에서 순종의 의미를 나눌 수 있는 특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서 자신이 의무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보고 있는 빌레몬도 분명히 자신이 의무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을 위한 준비를 맡깁니다. 어린 나귀 주인에게 전해 줄 말은 주가 쓰시겠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순종하는 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부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할 자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리고 순종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불순종 하는 자들은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예수님은 순종하며 메시야의 길을 가셨습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당신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주님을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기도제목

1. 용서하는 기쁨과 용서 받는 기쁨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두 가지 용서를 통하여 누리게 될 자유와 구원의 언약을 다시 듣게 하소서.
2. 하나님이 나의 순종을 의심하지 않는 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주가 쓰시겠다고 하실 때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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