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22:23-33
찬송: 170장. 내 주님은 살아 계셔
부활에 대한 오해
죽음의 경계를 뛰어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죄악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죽음의 권세를 파하신 것입니다. 그 승리는 부활로 성취됩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을 지키며 천사와 영과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현실주의자들입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한 주제는 부활이었습니다. 일곱 형제의 아내가 된 여인이 천국에서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였습니다. 지금도 진리를 부인하는 무신론적 사두개인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왜 사두개인이 될까요? 현실의 삶에서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을 맹신하고 인간의 이성을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그들은 정치적으로 입지를 견고히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의 성공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영적인 일들에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부활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부활이 없이는 영생이 없습니다. 부활이 없이는 이 땅에서의 진정한 성공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성공이 하늘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이 땅에서의 삶을 넉넉히 이기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이 두 가지 어울리지 않는 사실이 부활의 진리에 접근하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믿음의 족장들은 모두 지루한 믿음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너무 더디게 성취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맞습니다. 믿음은 기다림으로 성취됩니다. 그 기다림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깨뜨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기다린 시간보다 더 오래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영원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한 열쇠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 무릎 꿇는 인생입니다. 그 절망 때문에 사두개인이 됩니다. 현실이 중요해 집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진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세상이 하늘에 존재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 진짜의 그림자입니다. 죽은 자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 비극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당신은 산 자입니까 아니면 죽은 자입니까?
기도제목
1. 나의 지식과 경험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제한하지 않게 하소서. 부활에 대한 오해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사두개인들이 되지 않게 하소서.
2. 하나님이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소서.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인정하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제자로 믿음의 길을 걷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