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17:14-27
찬송: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믿음의 차이
예수님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자의 수난에 대해서 세 번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잘 알아야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성공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들을 치유했습니다. 어느 날 감당할 수 없는 병자를 만납니다. 간질로 심하게 고생하고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아들을 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갔지만 능히 고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누구에게 이 말을 한 것일까요? 간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향한 탄식입니다. 어찌하여 우리는 내쫓지 못했습니까 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대답해 주십니다. 믿음의 문제라고. 그들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도 없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과 믿음이 작은 것의 차이를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분의 차이
이 세상에서 성도는 어느 나라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까? 성도에게도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존재합니다. 두 개의 국적을 인정하는 나라도 존재합니다. 두 개의 여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유대인이었지만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국적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권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성도의 권리와 책임을 혼돈합니다. 구원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도 구원 받은 자의 책임을 잊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베드로에게 당신의 선생은 성전세를 내느냐고 도전했습니다. 이 질문에는 누가 당신의 왕이고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내겠다고 말하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납세의 의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가 왕이냐는 문제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실은 그들이 예수님에게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나라 임금을 위한 세금을 요구했지만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을 위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물고기의 배속에서 예수님과 베드로의 세금에 필요한 동전이 나왔습니다. 누가 진정한 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도제목
1. 나에게 믿음이 없음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겨자씨 만한 믿음을 허락하시고 이 산을 옮기는 능력을 보여 주소서.
2. 주님 안타깝게도 내가 두 개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 졌습니다. 이 땅의 백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