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자

By 2021년 2월 20일 No Comments

본문: 마 15:21-28
찬송: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예수님의 외면

소망을 가져야 할 때 절망이 찾아옵니다. 그 절망을 이기면 진정한 소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절망 가운데로 인도하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소망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 당신의 믿음이 외부 환경에 좌우되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자신은 다윗의 자손이 아님에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를 통하여 자비를 구했습니다. 자기의 딸이 귀신들려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절 때문에 믿음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외면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에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가나안 여인에게는 거절처럼 들리겠지만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초대가 분명합니다. 그 가나안 여인은 이제 곧 놀라운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외면에 상처받기 보다는 소망의 기도를 올려 드리십시오. 진정한 축복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의 자존심

충분히 마음이 상할만합니다. 자녀들의 빵을 가져다가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이방인에게 해선 안될 말이 분명합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이토록 잔인한 말을 하시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위대한 믿음을 보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누군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아무리 미천한 사람에게라도 해선 안될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것이었을까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불가능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나는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 보입니다. 성도의 자존심을 잃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성도를 무시할 때 입니다. 세상과 원수가 당신의 옛 자아를 무시할 때 반응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확인하고 싶으신 것은 이 가나안 여인의 자아가 죽었는가 였습니다. 그 여인은 훌륭하게 십자가를 통과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성도의 자존심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자존심이어야 합니다. 세상이 당신의 옛 자아를 무시하거든 기뻐하십시오. 세상이 당신 안에 있는 성령님을 무시하거든 침묵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하실 겁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간절히 바라는 그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1. 가나안 여인과 같은 나에게 찾아오셔서 자녀를 삼아주신 그 은혜를 기억하고 바랄 수 없는 중에 오직 주님만을 바라는 자로 살게 하소서.
2. 세상이 성도의 자존심을 건들지 못하게 하소서. 내 안에 아직 살아있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서 처리하고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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