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후서 7:2 -7
찬송: 216장. 성자의 귀한 몸.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사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영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원자의 은혜가 없이는 구원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미 구원을 위한 길을 열어주시고 원수를 이기신 소식을 듣고도 영접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에 있습니다. 안타까운 이 모습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고민입니다. 구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의 길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우리를 받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의 마음 안에 바울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할 공간이 있습니까?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도 바울처럼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나를 영접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 문이 열려야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이 가능합니다. 문 밖에 서 계신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 문이 열리면 당신이 모르는 시간 동안 당신과 함께 해 온 시간들을 나눠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위로하라
마게도냐에서 바울의 일행은 사방으로 환난을 당했습니다. 밖으로는 다툼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위로하십니다.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그 동일한 위로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의 위로가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의외로 우리가 받는 위로는 사소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위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위로하러 왔다가 욥을 가장 힘들게 하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로는 힘을 주기 위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사랑하지만 위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실패한 위로자가 될 것입니다. 위로에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하기 원한다면 위로가 아니라 그 영혼에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라도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없다면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을 소망한다면 하나님의 위로를 배워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위로의 방식을 버리십시오. 대상자가 원하는 위로의 방식도 내려 놓으십시오. 먼저 함께 하는 자가 되어야 위로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도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제목
1.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구원의 시작임을 알게 하시고 이미 나를 영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2. 실패한 위로자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주님의 위로를 배우고 함께 함으로 누군가에게 위로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