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15:11-32
찬송: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작은 아들과 큰 아들
세상의 질서가 있습니다. 먼저 된 자가 얻게 되는 권리가 대단합니다. 그래서 억울한 작은 아들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공평하게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작은 아들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며 아버지에게 자기의 몫을 요구했습니다. 자기의 권리와 몫을 주장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 누구에게는 간절히 갖고 싶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 아버지의 재산을 요구하는 아들은 불효자입니다. 재산 다툼이 일어나도 장례식장에서 일어날 때가 많은데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몫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의 몫을 요구하는 불효자입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얻어낸 것이 아닌 경우 방탕하게 소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갑니다. 땀 흘려 수고한 노력의 대가가 소중합니다. 둘째 아들은 모든 것을 탕진하고 전역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서 됩니다. 돼지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며 지내는 둘째 아들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아버지를 우리는 알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지만 둘째 아들을 용납할 수 없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함께 기뻐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마음을 오해하며 방황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우리가 지금도 좌절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모습에서 발견합니다. 서로 비교하고 누가 크냐고 다투며 살아갑니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시험에 듭니다. 작은 아들은 큰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상처 받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허비하고 돌아온 아들을 기다립니다. 그에게 아버지 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들은 언제라도 아버지를 떠나는 아들이 됩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늘 함께 있었지만 사실은 아버지와 함께 한 적이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서 마음 껏 방탕하게 살고 비참한 존재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깨닫게 됩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 하인들이 지금 나의 모습보다 나으니 내가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리라. 그저 일꾼의 하나로 여겨 달라고 말합니다. 내가 이제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범했으니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그 고백이 아들이 될 수 있는 자격입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눈물을 흘립니다. 아들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을 아버지와 함께 나눌 수 없는 아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제목
1. 누가 더 큰 자인지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아들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 변하지 않음을 잊지 않게 도우소서.
2.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하소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갈 곳이 없어서 빈손으로 아버지를 찾아온 아들이라도 기뻐하시 분임을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