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한 자

By 2021년 10월 8일 No Comments

본문: 욥기 4:12-21
찬송: 374장. 나의 믿음 약할 때

주관적 계시의 한계

하나님은 자기를 계시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의 창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흔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구약에는 성령의 역사가 많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신약의 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그 성령님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이 언약하신 것들을 성취하는 시작으로 성령의 증거들이 다락방 안에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드러났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과 귀로 들리는 것으로 성령님의 역사가 증명되었습니다. 엘리바스는 일반화의 오류로 친구인 욥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이번에는 주관적 계시를 통하여 고통 받고 있는 욥을 낙심하게 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다양하고 지체가 다양하지만 성령은 하나이시고 주도 하나입니다. 방언의 말을 하는 사람은 방언을 통역하는 자가 없다면 절제하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는 엘리바스가 경험한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은 일반화된 또 하나의 경험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고,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틀린 말이 아니지만 적합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경험한 주관적인 계시는 성령님에 의해 확인되어야 마땅합니다.

유한한 인생의 한계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삶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당신의 눈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기준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기들의 기준으로 지금도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사사기의 비극은 지금도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어떠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한 자들의 오류가 반복됩니다. 사사기를 살던 사람들에게도 모두 옳고 그름의 기준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옳게 살아보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시간의 관점에서 찰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믿지 못하시고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고 하십니다.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 살이 벌레처럼 무너질 자에게 무슨 의를 기대하겠습니까? 그들의 삶은 아침에 살다 저녁에 종말을 맞이합니다. 그들은 참 지혜를 알지 못하고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이 놀라운 통찰력으로 고난 가운데 있는 욥을 판단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한 자가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발견합니다. 겸손한 자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기도제목

1. 나의 주관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계시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깨닫게 하소서. 확신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2. 사사기의 아픔을 반복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서 인생이 얼마나 연약하고 짧은지 깨닫고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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